<줄거리 요약> 그녀에게서 도망치는 방법
신생아 시절 죽음의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살아난 '클로이'는 하반신 마비, 부정맥, 천식, 당뇨 등의 장애를 갖게 되지만 엄마 '다이앤'의 사랑을 받으며 밝게 자라난다. 대학에 지원한 후 합격 통보를 기다리면서 자신의 취미에만 관심을 쏟는 클로이. 엄마는 서운한 마음에 과거 비디오를 보며 홀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클로이'는 장을 보고 온 엄마의 봉투에서 초콜릿을 몰래 챙기려다가 엄마의 이름으로 지어진 약통을 발견하고, 그날 밤 엄마가 자신에게 준 약을 보고 엄마의 약이 아니었냐며 묻지만 엄마는 부인한다. 약에 의문을 갖던 '클로이'는 약통을 살펴보던 중 자신의 이름 아래 엄마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날 밤, 엄마가 준 약을 먹지 않고 컴퓨터로 약에 대해 알아내려던 클로이. 하지만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고, 그 모습을 주방에서 지켜보는 엄마. 클로이는 엄마 몰래 전화를 걸어 약의 정보를 알아내지만 약이 초록색이 아닌 빨간색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다음 날 숨겨둔 약을 챙겨 엄마와 영화를 보러 간 클로이는 영화를 보던 중 몰래 나와 약국으로 향하는데, '클로이'가 가지고 온 약은 개를 위한 약이며 근육이완제로 다리가 마비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 영화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집착을 보이는 엄마와, 그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딸의 이야기를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이다.
완벽에 가까운 고전 스릴러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전개와 '키에라 앨런', '사라 폴슨'의 열연이 빛나는 작품이다. 클로이를 바라보는 표정에서 불안과 집착, 폭력적인 감정을 모조리 드러내고 있었다.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서치>가 우연이 아님을 입증했다. 물론 이 영화가 <서치>보다 훌륭했다는 것은 아니다. <런>의 이야기는 너무나 익숙했다. 아이를 잃어버린 여자가 극단적으로 변해 남의 아이를 납치하고 그 아이를 키운다는 이야기,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다. 이런 스릴러에서는 더욱 흔한 소재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다이앤'의 상태인데, '다이앤'은 '클로이'를 일부러 병들게 만들었다. 동물이 먹어야 할 약을 강제로 먹게 만들어서 '클로이'를 약하게 만들었고, 이 부분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클로이'를 자신의 죽은 아기와 동일시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클로이'를 언제나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아기'의 상태로 두기 위해서 강제로 장애를 앓게 만드는 잔인무도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감금하고 고문하고 학대한다는 측면, 특히 못 걷게 한다는 부분에서는 스티븐 킹 원작의 <미저리>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 원인이 되는 감정이 집착과 비틀린 애정에서 기인한다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다루는 소재와 이야기가 흔한 데다 그걸 활용하는 방식도 아쉬웠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초반부터 끝까지 지나치게 친절했고, 영화시작부터 '엄마가 이상하다'는 것을 밝히고 시작하기에 '다이앤'을 향한 미스터리가 급격히 무너져 내린다. '다이앤'으로부터 도망치는 스릴러로서는 성공했지만 '클로이'가 자신을 둘러싼 세상으로부터 느끼는 위화감과 미스터리는 크게 줄어든 것이다. '클로이'로 하여금 의심에 의심을 반복하도록 구성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후반부에 관객에게 떠먹여 주는 부분은 아쉬웠는데 그렇게 다 알려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 사실을 모르더라도 '클로이'가 '다이앤'으로부터 도망칠 충분한 개연성이 있었는데, 굳이 그 사실을 지하실에서 부자연스럽게 알아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일이 마무리된 후 '클로이'가 진실을 알게 되는 전개가 훨씬 자연스러웠을 것 같다.
그리고 엔딩은 충격이 약했다고 생각이 드는데, '클로이'가 그간 받았던 학대 때문에 끝내 자유롭게 걷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우면서도 현실적이라 느꼈지만, 정작 '클로이'가 '다이앤'에게 같은 방법으로 복수한다는 부분은 묘사가 약했다고 느껴진다.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꼭 괴물이 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괴물이 되어야만 한다면 '다이앤'의 상상을 넘어서는 괴물이 되어야만 '다이앤'에게 공포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클로이'가 복수를 위해 주기적으로 찾아와서 '다이앤'에게 같은 방식의 약을 주는 행위,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이지만 '다이앤'은 오히려 기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옥에서 살아온 '클로이'가 '다이앤'에게 친히 선물하는 지옥으로는 너무 상냥하다고 할까. 취향의 문제이지만 엔딩은 다소 아쉬웠다. 이왕 복수할 거라면 더 악랄해져도 괜찮았을것 같다.
그럼에도 <런>은 보기 드문 수작이다. 이정도로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스릴러는 쉽게 나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는 내내 긴장했고, 재미있었고,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았다.
재미와 서스펜스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없는 영화
나의 유일한 가족이자 믿음의 상대인 엄마가 위험 인물이 되면서 집이라는 안락한 공간이 한순간에 위험한 공간이 되고, 그곳에서 탈출하려는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전작 <서치>를 통해 호평을 받았던 '아니쉬 차간 티' 감독의 후속작으로 뻔할 수 있는 스토리이지만 간결하고 힘 있는 전개로 90분의 러닝타임동안 몰입감을 선사한 영화이다. 또한 '클로이' 역을 맡았던 '키에라 엘런'은 실제 장애를 가진 배우로 불편한 몸으로 직접 모든 액션신을 소화하면서 그녀의 사실적인 연기에 더욱 몰입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빠른 전개와 쫄깃한 긴장감이 넘치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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