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배우 라인업, 수작 <더 콜러>를 리메이크하다
평소 스릴러, 미스터리 등의 장르를 정말 즐겨보는 입장에서 <콜>의 등장은 반가웠다.
특히 박신혜, 전종서, 이엘, 김성령 같은 배우들만 봐도 이 영화가 보통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모두가 서로 다른 이미지와 개성으로 무장한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싶을 정도였다.
연출을 맡은 이충현 감독은 단편영화 <몸값>으로 유명한 영화감독이다. 25살에 연출한 단편영화 하나로 토론토 국제영화제, 시카고 국제영화제까지 진출한 전력을 지닌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단편인 <몸값>은 이야기의 신선함보다도 그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의 신선함이 뛰어났던 영화였다. 거기에 원작이 된 매튜 파크힐의 영화 <더 콜러> 역시 탄탄한 구성을 바탕으로 수작이라 불린 스릴러였다.
비록 인물의 심리나 사랑에 대한 묘사도 부족하고, 대체 그 낡은 아파트에서 왜 나가지 않는 건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과거의 사람과 통화하게 된다는 영화의 식상한 설정을 나름대로 긴장감 있게 드러낸 영화이다. <몸값>의 감독이 박신혜, 전종서, 이엘, 김성령 배우를 이끌고 <더 콜러>를 리메이크한다니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20년 전 과거에서 우연히 걸려온 전화
서연(박신혜)의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된다. 뇌종양에 걸린 어머니,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가 실수로 가스를 켜놓고 가는 바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서연의 다리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다. 지워지지 않는 화상의 흔적처럼 어머니를 향한 서연의 미움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데, 특히 어머니의 매니큐어는 죽은 아버지를 연상하게 만드는 아픈 기억이다.
시골의 예쁜 집으로 들어온 서연은 마침 그날 휴대폰을 잃어버렸고, 집에서 낡은 전화기를 꺼낸다. 요즘은 보기 힘든 무선전화기. 이 전화기로 영숙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서연과 영숙은 통화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친해지게 된다. 그 전화가 과거에서 온 전화임을 알게 되면서 영숙이 서연을 돕는 중반까지 영화의 흐름은 무척 흥미롭기만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릴러를 추구하고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만 집중했던 원작 <더 콜러>와는 달리 <콜>에서는 직접 영숙의 상황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 둘의 세계는 전화를 통해 연결되는데, 영숙의 상황은 무당인 어머니에게 학대받고 있다는 설정이었다. 정황상 영숙의 엄마인 신엄마(이엘)는 영숙을 정신병원에도 가두었던 것 같고, 영숙에게 악령이 깃들었다고 믿는 것 같다.
영숙은 지속적인 학대로 정신이 망가지고 있었고, 영숙과 서연의 우정은 뻔하기는 해도 제법 괜찮았다. 영숙은 누구에게라도 집착할 만한 사이코패스이고, 서연도 당장 마음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둘의 매개가 되는 서태지 역시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소재라고 생각한다.
되살아난 서연의 아버지, 행복한 가족, 여전히 영숙을 괴롭히는 신엄마의 구도가 이 영화의 흥미로운 요소이지만 신엄마가 죽으면서 영화가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우선 신엄마의 죽음 장면 연출은 좀 안타까웠다. 베개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걸 보고 그냥 칼을 내리꽂는데, 아무리 딸을 살해하기 위해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라고는 해도 실컷 찌르고 보니 인형이었다는 이런 무성의한 클리셰는 영화의 수준이 급격히 떨어지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영숙의 고삐가 풀어지면서 영숙은 그대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된다.
흔한 소재와 평면적인 캐릭터 한계
전화기를 통해 과거와 연결된다는 너무 흔해져 버린 소재였다. 엔딩에서 반전을 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엔딩의 처리조차도 더욱 이상하고 유치해져 버렸다. 반전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치밀하고 영리해야 하는지 <몸값>에서는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콜>에서는 전혀 모르는 느낌이었다. 전반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영화였다고 할까. 살인의 무게, 과거로 인해 바뀌는 현재의 두려움, 스릴러로서의 긴장감이 전부 가벼웠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는 평면적이고 구조도 그리 파고들만한 요소는 없었다. 결국 마음대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과거의 살인마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서연의 패배로 끝났으면 나았을 것 같다. 애써 어머니의 모성으로 위기를 극복한 후에 그걸 또 뒤집는 반전보다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전종서와 박신혜, 이엘 배우의 열연이 빛났고 영화 자체는 재미있었다. 평범한 수준의 스릴러 영화, 그 정도였다. 생각을 내려놓고 보다면 충분히 적절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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